삼분의일 매트리스 개발기

삼분의일 매트리스를 만들기까지

 

모든 창업의 시작은 두려움과 설레임이 뒤엉켜있다.

나 역시,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될까? 될 거야!! 를 반복하다가 결국 중력에 이끌리듯 다시 창업을 하게 되었다.
“왜 매트리스야?” “왜 다시 창업했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 기회를 봤고 실행에 옮겼다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사실 짧은 대답 안에 많은 고민과 용기가 녹아있다는 것을 창업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1년 전, ‘해보자!’ 결심을 내린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마침내 설레임이 두려움을 밀어내고 불확실한 ‘확신’이 마음속을 꽉 채우면서 용기를 냈던 순간이었다.

“Dots will be connected.”

내가 불안할 때 되뇌는 잡스 어록이다.


첫 직장은 종합상사에서 고기 담보 대출 심사역 업무를 했다. 육류업체에 고기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일이었다.
사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굉장히 재밌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일할 수 있었고,
나도 사업을 꿈꿨기에 사장님들에게 완전히 감정 이입해서 열심히 일했다.  결국 나도 회사를 나와서 창업을 했다.
그 후 가사 도우미 플랫폼 서비스 ‘홈클’을 창업했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팅을 하다가 청소팀을 꾸렸다가 투자를 받고 집 청소 서비스로 피봇팅 했다.  앱으로 고객과 가사도우미를 연결시켜주고 매칭 알고리즘을 고도화해서 최적의 아주머니를 찾아주겠다는 시도였다. 하지만 결국 잘 안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로… https://brunch.co.kr/@joohoonjake/21)

회사를 닫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창업보다 폐업이 100배정도 어렵다. 그리고 너무 힘들다. 2년간 모든 것을 투입했던걸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기분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지 않다.

폐업 후 답답한 기분을 견딜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몸을 혹사시킨다고 바뀌는건 없었다. 대신 누구나 만나면 얼굴이 썩었다고 했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은 항상 예상치 못한 경로로 찾아온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로부터 뜻밖의 제의를 받았다.

“매트리스?”

더 이상 외주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매트리스는 나도 모르게 쑤욱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나는 매트리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계속 공장으로 출근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폴리우레탄 발포 공장 사장님에게 듣는 폴리우레탄 강의도 재미있었고 사장님의 엔지니어 감성에 매료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밀도와 경도를 조절해서 만든 다양한 폴리우레탄 폼 여러 개를 조합해서 나한테 꼭 맞는 매트리스를 만드는 프로세스에 완벽하게 빠져있었다.

조합하고 또 조합하고 조합했다.
기본적인 폴리우레탄 물성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법을 배운 후부 터는 노가다였다.
내가 원하는 느낌을 찾기 위해서 수천번 레이어 조합을 바꿔가면서 테스트를 했다.
내가 원하는 느낌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물 위에 떠있는 느낌 (무중력 느낌)

2) 너무 푹 빠지지 않고, 내가 딱 원하는 정도만 파묻힐 것

3) 고반발과 저반발의 중간 느낌

매일 폴리우레탄 밀도,경도에 대해서만 생각하니 거짓말처럼 어느 날 layer 구성과 조합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대로 조합해보니 내가 찾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집착과 집중력의 조합은 참 무섭다.

 레이어의 황금 조합을 발견하는 순간, “됐어!!” 를 외치면서 방방 뛰어다녔다.
바로 퀸사이즈 매트리스로 만들었고 그날 용달차로 싣고 집으로 향했다.

내가 만든 매트리스 위에서 첫날밤은 황홀했다. 다음날부터 나는 일어나자마자 어떻게 잠들었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겠다 싶은 것들을 복기했다.

완벽해만 보였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1주일이 지나면서 개선할 점이 많이 보였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궁금해서 같은 스펙으로 몇 개 만들어서 주변에 제공했다. 그리고 1시간씩 인터뷰하면서 그 사람의 감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다른 사람의 감각과 느낌을 이해하고 제품에 적용시키는 일이 이렇게 재밌었다니… 새로운 적성도 발견했다.


이후부터는 제품의 개선에 개선을 거듭했다.

총 10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각 프로토타입별로 30명씩 테스트를 하고 혹독하게 인터뷰를 했다.
공장에서는 혀를 내둘렀다. 보통 모델 교체를 2년마다 하는데 나는 6개월 동안 무려 10번의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마지막 프로토타입이겠거니 할 때마다 새로운 수정사항과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이쯤 되었을 때 나는 아무 스펀지나 스윽 눌러도 대략적인 밀도와 경도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집에도 10개의 매트리스가 쌓였다..

첫번째와 네번째 프로토타입
얼마 안 갈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매트리스에 대한 집착이 6개월을 넘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기 시작했다. 엔젤투자를 원하는 사람이 생겼고(줄을 섰고),
공장장님의 경우 매우 적극적으로 모든 제품에 대한 내 의견을 묻기 시작하셨다.
니가 무슨 매트리스를 만드냐며 비웃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샘플을 구입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기 시작했다.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혼수를 구비하는 커플도 생겼고, 어떻게 알고 유명인도 구입해가셨다. 아직 정식 출시도 안 했는데… 이처럼 미칠듯한 집중과 간절함은 사람들을 움직인다.

지금 뒤돌아 보면,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 싶다.
그리고 앞을 보면 이걸 또 어떻게 할까 싶다.
근데 해볼 만한 여정인 거 같다.

“dots will be conne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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